포위망을 뚫고서…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되는가?
지리산 피아골 산속에 갇혀 수백 명의 경찰이 포위하고 그물을 좁혀오는 긴급한 상황이다. 지난 40여 일간 어떻게 버텼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전국을 돌아다녀도 이러한 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이틀 전부터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었다.
그저께 아침이었다. 누룽지를 끓여먹고 등산을 준비했다. 몇 시나 됐을까. 시간을 알아보려 도피할 때 준비한 핸드폰을 켰다. 11시쯤이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나서 황급히 전원을 껐다.
핸드폰은 전파추적으로 위치가 발각되기에 여러 개의 핸드폰을 그동안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전화한 것이 누구일까?

전화한 것이 누구일까? 만일 우리동지들이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놈들이라면 어찌하나. 마음은 꺼림칙했지만, 단 한번의 벨소리에 전원을 껐는데 설마 알 수 있으랴 싶어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이곳의 유일한 친구 산동이(4년생 진도개)가 산행인줄 알고 내 얼굴까지 뛰어오르며 반겼다. 힘이 좋은 산동이에게 끌려가다시피 산으로 향했다.
전화벨소리가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모든 것 잊으려 열심히 올라갔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산동이가 산토끼냄새라도 맡았는지 발광이다. 줄을 풀어주자 길옆 산 위로 쏜살같이 달려 올라간다.
불러도 뒤도 안보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에도 마을로 달려가 염소를 물어 죽인 일이 있다기에 허겁지겁 좇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길도 없는 눈 덮힌 지리산은 장난이 아니었다.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지리산은 몹시 춥다. 잠깐을 기다리는데도 땀이 들어가고 추위가 느껴진다. 골바람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되는 것 같다.


김대중, 지금은 누구를 죽이고 있는가?

그때 저 아래서 노부부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도피 생활하는 동안 남들은 다 행복해 보였다.
나는 남들의 전화벨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경찰차나 교통순경만 보아도 괜히 불안해진다. 밤이면 조그만 소리에도 신경이 팽팽해졌다.
노인네들은 조용히 내 앞을 지나갔다. 산동이를 불러도 소식이 없다. 담배한대를 더 피우는데 진념의 표독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이근영의 무능하고 한심한 작태도 기억났다.
가슴이 꽉 막혀온다. 대통령의 무표정한 얼굴도 보인다. 72년인가 DJ의 장충단공원 유세에서 수십만의 지지자들이 연호하던 모습도 스친다.
그때는 농민과 노동자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라고 외치던 팽팽한 모습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누구를 죽이고 있는가? 세월의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또 누군가의 도전으로 앞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노동자 세상을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려야 한다. 한겨울 눈 속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잡초들이 파란 싹을 내밀어 순식간에 겨울을 봄으로 바꾸듯이 우리는 어떤 역경도 딛고 일어서 너희 놈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산동이가 눈밭을 얼마나 뛰었는지 온몸이 젖은 채 돌아왔다.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내 앞에 앉는다.
줄을 매자 헉헉대며 하산 길을 내려간다. 다시 땀에 흥건히 젖을 무렵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산아래 첫 마을. 그래서 피아골에서는 이곳을 직전마을이라 부른다. 집에 와서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씻었다.
지난 추위에 보일러가 터져 물이 나오지 않아 냉수마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운도 하련만 계속 전화벨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지리산의 밤은 길다. 해가 지면 곧 깜깜해지고 날이 밝아야 아침이다. 저녁 6시 반 식사를 하고 내방으로 내려오는데 밤바람이 몹시 차다.
내방은 반지하로 바로 앞이 피아골계곡이고 골짜기 건너는 눈덮힌 산이 가로막고있다. 어제는 계곡물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는데 오늘밤은 위협적이다.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챙이 펄럭이는 소리가 누가 몽둥이로 천막을 치는 것 같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철 계단도 덜컹거린다. 계곡으로 이어지는 대나무 싸리문도 삐걱거린다. 마치 이곳으로 누가 몰려오는 것 같다. 늘 듣던 소린데도 오늘은 무척 신경이 써진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녁에야 잠깐 눈을 붙였다.

날이 밝아 일어나니 잠을 못 잔 탓에 머리가 띵했다. 최근 두 달 동안은 계속 머리가 맑지가 않았다. 투쟁의 피로와 도피생활의 불안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때 "작가선생님 아침드시죠!"하는 주인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선생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작가인데 글을 쓰려고 민박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기에 이집 사람들은 나를 작가로 알고있다.

이곳 직전마을은 모두가 민박집인데 이집 구조상 내방은 남의 눈에 안띠는 곳에 위치해서 안성맞춤이었다.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망할놈의 세상은 나같은 도피자는 속이 아파도 약을 사먹을 수가 없다. 의약분업이 우리현실에 맞아 실시한것인가. 노벨평화상인가 뭔가 때문에 실시했다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온산이 눈으로 덮혀 있다. 저 산에는 고로쇠나무가 많아 2월 중순이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속병에 좋단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물맛도 못보고 이곳을 떠야할 것 같다. 왠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이번주 목요일은 이곳을 뜨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곳이라고 안전할 곳이 없지만 또 어디론가 뜨기로 하고 대강 짐정리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속이 더욱 안좋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내방으로 내려오는데 깜깜한 층계 밑에서 누군가가 숨어있는 것같아 머리털이 쭈볏 선다.
도피생활에 심약해진것이려니 생각하고 녹차를 한잔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브르스타를 켜고 녹차물을 끓였다. 아직도 감방에서 여섯명의 동지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벌을 받겠다는데 안풀어주고 어쩌자는 것인가. 이정권은 30년 야당하면서 무얼 배웠나. 과거 보수정권보다 더한 놈들이다.
경제에 자신이 없으면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기용하고 정책을 바꿔야 하는것 아닌가. 외세의 요구는 무조건 수용하고 노동자는 무조건 때려잡는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더러운 세상. 끝까지 싸워보자. 갑갑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홉시쯤 됐나보다. 그때 길 아래쪽에서 차가 올라오는 불빛이 보였다. 이시간에 왠차일까! 막바로 아랫집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직전마을입구에 있는 첫 집이다. 거리가 백여미터는 됐지만 자세히 보니 경찰차임이 틀림없었다. 표시등도 안켜고 올라온 것이다. 저집 주인이 이마을 반장이라는데 왠 일일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급히 옷을 챙겨입고 계곡으로 내려가 동정을 살폈다. 올것이 온것 같다. 추위가 엄습했다. 발이 시리고 귀가 아프다. 이를 악물고 있어도 이빨이 부딪쳤다.

한참을 기다리니 경찰차가 가고 누군가가 이 집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큰기침소리로 보아 이집남자였다. 계곡에서 올라와 다가갔다.
"아니 선생님, 밖에서 뭐하십니까?"
"아랫집에 다녀오세요"
"예, 반장하고 소주한잔 하는데 경찰들이 와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물어봤다.
"경찰이 왜 왔대요?"
"금융노조위원장을 잡으러 왔대요" 순간 숨이 멎었다.
"여기는 없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청와대하고 통화를 했는데 전파가 여기서 잡혔대요. 반경 2km이내에 있답니다" 청와대놈들이 전화를 한거였구나. 심장이 몹시 뛰기 시작했다. 머리속이 윙윙거렸다. 집주인이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계속 떠든다.
"피아골산장에도 전화를 해서 누구든지 오면 신고하라고 합디다. 그리고, 다른 경찰들한테도 등산로입구를 지키라고 하면서 검문소까지 곳곳에 병력을 배치하라고 지시합디다. 아마 날이 밝으면 본격적으로 수색을 할 모양이예요. 여기는 길이 하나라서 그렇게 하면 한 발짝도 못나가요." 여기서 검문소까지 5km정도 계곡을 따라 꾸불꾸불한 외길이 나있다. 그 길 중간중간 병력을 배치했단다. 이곳은 지키기는 용이해도 탈출은 어렵다.

그래서 옛날에도 빨치산들이 이곳에서 근거지를 두고 싸우다 몰살한 곳이다. 아무생각이 안났다.
"이 마을엔 조난사고 아니면 경찰이 오지도 않는데 저렇게 많이 온다니 참.. 들어가 주무세요" 귀찮은 일에는 상관 안하겠다는 투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방법은 산을 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길도 없고 눈에 덮힌 산을 밤에 장비도 없이 넘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길을 잃고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앉아서 그놈들에게 잡힐 수는 없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얼어죽을지라도 잡히지는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때 저 아래서 또 두대의 차가 올라왔다. 경찰차 였다.
한대는 윗집으로 올라가고 뒤에 오던 차는 이집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미친듯이 튀었다.
계곡에 빠지고 넘어지면서 건너편 산속에 몸을 숨겼다. 푹푹 빠지는 눈길이지만 물소리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윗집에는 불이 환히 켜지면서 방마다 여는 것이 보였다. 이집으로 온차는 주인과 무슨말을 했는지 다시 올라 가버렸다.
아마 금방 경찰이 다녀갔다고 주인남자가 둘러댔을 것이다.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렸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장갑도 등산화도 신지 않아 더 춥다.
좀 있으려니까 마을 윗쪽에서 차가한대 내려오더니 저아래 길모퉁이로 가서 멈추고는 불을 껐다. 이제 상황판단이 섰다.
오늘은 몇 집만 보고 차한대는 위에서 등산로를 지키고, 또 한대는 이 마을 입구에 멀찍이 떨어져 지키는 것이다. 검문소까지 저런식으로 지킬 것이다. 조심해서 내려와 내방으로 돌아왔다.
불빛이 안새도록 촛불을 켜고 조용히 생각해 봤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주여 함께 하시어 우리들을 보호하소서' 묘안이 없다.
내가 얼어죽는다면 이놈의 세상이 바뀔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순간 이곳에서 1km아래 길가에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간이화장실 두 개가 생각났다. 누구든지 연락해서 그곳에서 접선을 해야한다.
날이 새기전에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켰다. 벌써 12시였다. "여보세요, 접니다. 새벽 5시까지 그곳으로 와주세요. 저는 화장실 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암호를 꼭 말씀해주세요." 전화를 끊고는 짐을 정리했다.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챙기고는 나머지는 정리해서 두고 가기로 했다. 등산복을 두개나 껴입었다. 털모자와 실장갑도 챙겼다.


다음투쟁을 위해서…

등산화를 신고 신발 끈을 동여 맺다. 계곡으로 내려가 덤불의 마른풀들을 헤치며 산을 올랐다. 일단 산을 타고 올라가서 길을 따라 평행으로 간다음 화장실로 건너가 잠입하려는 것이다.
삭풍에 나무들이 우는소리가 들렸다. 망할 놈의 세상이다. 길 건너에서 이쪽을 자세히 보면 하얀 눈위에 움직이는 물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수직으로 들어낸 검은 바위들 근처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별들이 초롱초롱했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무를 잡고 바위에 기대며 얼마나 왔을까. 건너편에 화장실이 보였다. 그러나 큰일이었다. 그 100m쯤 아래에 경찰차가 불을 끄고 서있었다. 그렇다면 저곳에서의 접선은 무망해지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새벽 세시반이었다.
일단 조금만 내려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순간 깊이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온몸이 곤두박질치면서 굴렀다. 발목에 찢어지는 통증이 왔다. 비명도 못지르고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나왔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또 떠오른다. 죽더라도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추위가 덮쳐오자 통증도 조금 가라앉았다. 이곳 어디엔가 빨치산 비트가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빨치산이 수없이 죽었다고 한다.
그때 계곡 물이 핏빛으로 흘러 이곳 지명이 피(곡식의 일종)를 많이 경작한다고 피밭골이었던 것이 피아골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는 빨치산의 귀신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귀신이 사람보다는 편하다. 귀신이라도 있으면 나를 도와줄 것 같았다. 추위로 콧물이 흘러내렸다. 움추린 어깨가 아프다.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되어도 접선을 못한다면 이산을 넘을 것이다. 추위에 온몸이 진저리가 쳐진다. 저길 아래쪽에서 차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도 차가 내려왔다.
수색을 위해 교대를 하는 모양이다. 그때 화장실 아래차도 불을 켜고 내려가 버렸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계곡으로 내려와 화장실로 잠입했다. 간이화장실 속이 그렇게 아늑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다.
우리의 바램은 단순한 것인데 너희 놈들이 허용을 못하겠다면 우리는 투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희 놈들은 신자유주의 공세로 노동자를 무한경쟁의 희생물로 선택했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와 노동자들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가진놈과 힘있는 놈들이 없는자와 약한자들을 속박하는 억압과 투쟁의 반복이었다. 아무리 산업화와 정보화로 세상이 변했지만 억압과 투쟁의 역사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계속되고 있다.
미친놈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우리가 투쟁으로 노동자가 힘을 가지는 세상을 만들었을 때 만이 이러한 모순이 해소될 것이다. 거짓말을 밥먹듯하는 놈들과 자기 색깔을 잊고 지지자들을 짓밟는 그런 놈들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나는 반드시 다짐을 꼭 지킬 것이다.
화장실 틈새로 차가 올라오는 불빛이 보였다. 누구차일까. 조금 있더니 차가 화장실 앞에서 멈췄다. 암호가 들렸다. 순간 문을 박차고 나가 차속으로 뛰어들었다. 뒷좌석 아래로 눕자 내 몸위로 두꺼운 겨울옷들이 겹겹이 덮어졌다. 운전석이 뒤로 밀리고 조수석이 제껴졌다.

뒤좌석 사람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거나 다리를 내 몸위로 얹었다. 꼼짝할 수 없었다. 차안의 음악소리가 커졌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왁자하게 났다. 얼마나 많은 옷들이 덮혔는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런 방법으로 뚫고 나갈 수 있을까? 한참을 달렸다. 길가에 수없이 그놈들이 깔려 있단다. 그리고 경찰차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단다. 노동자 때려잡는데 정말 대단하다. 세상이 꺼꾸로 변했나보다.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이런 미친 짓들은 안했다. 차가 멈췄다. 아마 검문소 일 것이다. 호흡이 가빠졌다. 무엇이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숨을 쉴 수가 없다. 얘기는 계속됐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무엇인가 잘못된 모양이다. 기도를 했다. 큰소리가 나고 다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문소에는 경찰차들이 5대정도 있었단다. 모두들 이 차안을 바라보고 있고 검문경찰이 누구냐, 언제 올라갔었느냐, 왜 곧바로 되돌아오느냐, 어디로 가느냐 등 자세히 묻더란다.
놀러왔는데 민박하러 갔다가 추워서 도저히 민박할 수가 없어 다시 내려왔다고 답하고는 왜 이곳으로 가자고 했느냐고 서로 다투는 척 하면서 화엄사 길을 묻고는 차를 뺏단다.

일단의 큰 고비를 넘기고 난 후 큰길에 나와서도 경찰차들은 많이 오갔지만 차안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미친짓하는 놈들의 포위망을 뚫은 것이다. 태양을 바라보았다. 구름 속에 가려졌던 태양이 내가 보고있는 시간에 금새 구름이 걷히면서 엄청난 빛을 발한다.
등산복을 버리고 속에 입었던 간편복장으로 고속버스에 올랐다.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의자를 뒤로 제끼고 깊은 잠을 청했다. 다음 투쟁을 위해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이 용 득

노동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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