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단체교섭 중인데요. 노조위원장이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을 삭감하는 합의에 도장을 찍으려고 하네요. 총회에서 협약체결 전에 동의를 구하도록 규약으로 정하고 있는데 바쁘다면서 총회 개최도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을 하다 보면 노조운영이나 단체교섭에 관해 노조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노조는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해 노조대표자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규약에 노조대표자의 협약체결권한에 대한 절차적 제한 규정을 둘 수 있다. 가령 노조대표자가 사측과 단체협약 체결 전 최종안에 대해 총회의 의결을 받도록 하거나 적어도 교섭위원 모두의 서명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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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절차적 규정에도 노조대표자가 ‘고독한’ 결정을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측과의 교섭 과정에서 경영상황을 빌미로 한 사측의 강력한 압박이나 금전을 대가로 한 회유 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노조대표자가 굴복해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약화 시키는 합의안에 동의했다면 그 합의안은 효력을 발휘할까?

안타깝게도 조합원 모두가 반대하는 근로조건 개악안에 노조대표자가 독단으로 합의하더라도 그 합의안은 효력을 발휘한다. 법원의 판례는 이미 노조대표자가 노조 규약에 따른 내부 총회 등의 의결이 없이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더라도 효력이 있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해당 판례는 협약안에 대해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인준투표제를 정한 노조 내부 규약은 노조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 체결권을 흐지부지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위법하다 판결하기도 했다.

이런 판례에 근거해 이제까지 노조대표자는 조합원의 다수의 반대가 있더라도 홀로 ‘고독한’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대법원의 판례는 이러한 노조대표자의 고독한 결정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2018년 7월의 대법원 판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통신대기업 노동자들이 조합총회의 의결을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규약이 정하고 있음에도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임금피크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해당 노조는 2014년 4월 사측과 단체협약을 통해 △특별명예퇴직 및 임금피크제 시행 △복지제도 축소 △전환배치에 합의했다. 노사합의 과정에 노조는 조합원 총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이후 사측은 노사합의를 근거로 8천300명을 퇴직시켰다.

이에 퇴직자와 전환배치자를 중심으로 한 조합원 일부가 노조위원장의 행위가 총회의 의결을 통해 단체교섭을 체결하도록 정한 노조규약을 위반해 무효이며, 근로조건이 저하됨은 물론 불법행위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당시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내부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노조위원장 독단으로 한 노사합의는 헌법상 단결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판결했다(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05908). 재판부는 노조위원장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피해를 입은 퇴직자등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도 나온 바 있다(대법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이는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으면 개인적으로 반대하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이 발생한다”(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다85997)는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판결이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사측이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노조와 야합해 졸속으로 불이익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 꼼짝 못하고 해당 근로조건 개악을 받아들여야 했던 개별 노동자들이 버틸 언덕이 생긴 것이다.

노조대표자로서는 현장 조합원의 다양한 애로사항을 듣고 사측의 임금지불 능력 등을 고려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해 가장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6조는 단체협약 체결과정에서 조합원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동법 22조는 조합원에게 노조의 문제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 총회의 의결을 통해 단체교섭을 체결하도록 정한 노조규약까지 있다면 조합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노조대표자가 홀로 고독한 결정을 하는 행위는 불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한 노조대표자의 고독한 결정에는 손해배상이라는 비싼 대가가 예정돼 있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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