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에 따른 피해자 정신적 고통 배상해야

직원채용의 과정에서 행사할 수 있는 자율성 내지 재량성은 어디까지나 관련 법규 및 인사관리규정 및 채용계획 등 피고 내부의 규정 등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를 지닌다.

피고의 신입직원 채용절차에 응시한 원고로서는 채용절차가 이 사건 공고 등에서 정한 바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되리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원고의 신뢰와 기대는 법적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채용절차가 객관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고, 채용절차에 관여한 면접위원 등의 사용자로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서울남부지법 2018.10.11. 선고, 2018가합 100190 )

피고의 직원들이 시행한 이 사건 채용절차는 그 객관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고, 채용절차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진행에 대한 원고의 기대와 신뢰라는 법적 이익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 사건 채용절차에 관여한 피고의 면접위원 등 직원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세평조회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반영하는 등으로 원고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채용절차에 대한 신뢰와 기대라는 법적 이익을 침해하였고, 원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직업의 선택 및 수행을 통한 인격권 실현 가능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채용절차에 관여한 면접위원 등의 사용자로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채용비리와 위자료

법원, 은행 비리 감시·감독하는 금감원 채용비리 위법성 인정

높은 연봉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권에서 우리은행을 필두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채용비리가 터져 나왔다. 또 검찰수사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고위임원의 자녀를 특별관리하며 채용시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현대판 음서제도를 시행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남성 지원자를 더 뽑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지원자를 차별했다.

최근 법원은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채용비리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금감원에 대해 “채용절차에 관여한 면접위원 등의 사용자로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서울남부지법 2018.10.11. 선고, 2018가합 100190).

은행의 채용비리를 감시·감독하는 금감원조차 채용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금감원은 인사청탁을 받은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위원인 고위간부가 서류점수를 조작해 부적격자를 합격시켰다. 아울러 채용공고시 공지하지 않았던 평판조회라는 절차를 추가하면서까지, 전형과정에서 최고득점을 한 응시자를 탈락시켰다.

이번 금감원과 은행권의 채용비리는, ‘빽’없고 돈없는 청년들은 채용에서도 차별받는다는 사회적 불신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채용비리로 무너진 기업과 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생각한다면, 금감원과 은행권의 채용비리 관련자는 엄중한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채용절차의 공정성

사건의 경위

피고인 금감원은 2016년 신입직원 채용공고를 내고 채용절차를 진행했다. 원고는 피고의 채용절차에 응시했던 지원자로, 2명 채용이 예정된 5급 일반직 금융공학 분야에 응시했다.

피고는 채용절차 진행에 앞서 채용설명회를 여러 대학에서 개최했는데, 이때 채용공고에 정한대로 ‘합격자는 각 단계별 면접점수와 필기시험 점수를 50%씩 합산하여 100점 만점으로 환산 후 고득점자 순으로 결정한다’고 고지했다.

그러나 실제 채용과정에서는 채용 공고·설명회에서 밝혔던 합격자 결정방법과 달리 면접대상자들에게 면접점수를 부여하지 않고, 면접위원 전원의 합의를 거쳐 합격자를 결정하는 면접전형을 진행했다. 이렇게 2차까지 면접을 진행한 결과, 총점 135점을 받은 원고와 그리고 정모 씨(131.9점)가 합격순위에 들었고, 127.1점을 받은 방모 씨는 불합격 대상자였다.

그럼에도 면접위원들은 채용공고에 없었던 평판조회를 시행하기로 결정했고, 평판조회 이후 금융공학 분야 합격자 채용정원은 당초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또 평판조회결과가 2차 면접결과에 반영되면서, 당초 불합격 대상자였던 방모 씨가 최종합격자로 결정됐다.

평판조회를 통한 최종합격

당자사의 주장

원고는 피고의 신입직원 채용절차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재량권 행사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2차 면접종료 후 합격자가 예정된 상황에서 피고가 시행근거도 없고 객관성·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평판조회를 시행해, 금융공학 분야에서 1등을 한 원고를 불합격시키고, 방모 씨를 합격시킨 사실이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원고는 피고에 대해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원고가 (적법하게 채용됐다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미지급 임금 상당액 및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는 “이 사건 채용절차는 채용의 자유 내지 재량 범위 내에서 진행됐다”면서 “면접위원들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세평조회의 실시도 적법했다”고 반박했다. 세평조회 결과가 나빠 원고를 채용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설령 채용절차에 위법성이 존재한다거나 절차상 다소간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손해와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가 주장하는 고용의 의사표시 및 손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의무를 부정했다.

채용비리와 손해배상

재판부의 판단

이 사건 채용절차가 불법행위에 해당되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채용계획·채용공고·채용설명회 관련자료 등에 합격자 결정방법을 명시했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면접위원 전원의 합의를 거쳐 합격자를 결정하는 관행에 따라 면접전형을 진행한 후 피고직원이 면접점수를 형식적으로 책정한 점 ▲최종합격자 방모 씨가 서울 소재 ○○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지방 소재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것으로 기재된 지원서를 제출했고, 피고의 직원이 이를 인지했음에도 지원서 오기재자들에 대한 합격취소 결재를 올리면서, 방모 씨의 경우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구두로 합격선에 영향이 없다는 내용으로만 보고했으며, 이에 대해 이모 면접위원은 방모 씨를 1위로 변경하며 “방모 씨를 뽑으면 지방인재가 늘어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진술한 점을 제시했다.

또 ▲피고의 면접위원들은 당초 채용 계획·공고에 없던 세평조회를 2차 면접이 종료돼 합격예정자가 결정된 상황에서 실시했는데, 최종합격예정자 중 직장경력이 있는 자 중에서도 일부만 세평조회를 실시했고, 세평조회를 실시한 기간도 하루에 불과해 세평조회의 절차·방법 그 결과의 반영이 모든 응시자들에게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 ▲당초 2차 면접결과 불합격자였던 방모 씨 아버지에게 피고의 직원이 합격을 암시하는 언급을 한 사실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직업의 선택 및 수행을 통한 인격권 실현 가능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며 “피고는 이 사건 채용절차에 관여한 면접위원 등의 사용자로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8000만원)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채용비리에 따른 정신적 위자료 8000만원은 이례적인 금액인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가 일반적 사기업과 달리 공적 성격이 강한 감독기관으로 선망받는 직장인 동시에 채용절차에서 기대되는 객관성과 공정성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 ▲필기 및 면접 전형을 통해 높은 점수를 취득한 원고가 불공정한 세평조회 결과로, 자신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느꼈을 상실감과 좌절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위자료금액 책정 근거로 제시했다.

채용비리와 회사의 채용의무

회사 채용의무는 불인정

이 사건 재판부는 채용절차의 위법성을 확인하고, 그 책임을 물어 원고에게 위자료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법 채용절차로 받은 원고의 손해가 완전히 보전됐는지는 의문이다. 원고가 주장하는 피고의 고용 의사표시 청구 및 임금 상당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재판부가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채용절차에서 이루어진 세평조회 등이 공정성 및 객관성을 상실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지만, 원고가 2차 면접결과 최고득점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당연히 고용관계가 성립한다거나 피고가 원고의 청약에 대해 승낙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불법 채용절차가 없었다면, 원고가 피고회사에 취업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전제로 한 원고의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청년실업이 만연한 현재, 채용비리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이고, 채용절차가 객관성·공정성을 상실한 채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경우 그 불이익을 받은 지원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금전적인 배상으로도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며, 판결을 통해 채용비리 피해당사자인 피고의 정신적 고통을 보상하는 위자료 지급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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