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오늘]


언론사 비정규직 사원들의 수가 날로 늘어나면서 이들의 노동조건과 고용불안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사원이 전체 사원의 절반 안팎을 차지하는 방송사의 경우 갖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올해 초 미조직·비정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는 올해 사업과제로 △정규직 업무의 비정규직 대체 금지 △비정규직 고용관계 변경 시 노조와의 합의 의무화 △비정규직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근무복 지급, 복지시설 이용, 후생복지 제공 등) △비정규직 노동자 생활임금 보장(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단계적 확대적용) △비정규직 노동자 4대 보험 가입보장 △간접고용과 이중착취 제한 등 6가지를 설정했다. 언론노조 특위는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이 과제들을 공동 요구안 형태로 각 회사에 전달할 방침이다.


파견직 2년마다 재계약 ‘고용불안’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방송사 비정규직은 직접고용 형태인 기간제 계약직, 아르바이트·파우처와 간접고용 형태인 파견용역직, 특수고용 형태인 프리랜서 등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려야 한다. 파견용역직이나 한시계약직은 언제 회사에서 내몰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의 고통까지 감수해야 한다.

계약직 사원의 임금은 정규직 사원의 평균 50% 정도이며, 파견직 사원은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안팎에 그치는 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 그나마 임금도 원칙이나 기준 없이 회사가 마음대로 책정한다. 파견직 사원을 보내주는 인력업체 선정도 직무능력 보다는 인맥 등과 같은 사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파견직 사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KBS의 경우 적게는 55만원에서 많게는 90만원 정도의 임금을 주고 있으며, MBC도 7∼10년 근무한 한시계약직 사원들에게 평균 60만∼70만원 수준의 ‘쥐꼬리’만한 임금을 주고 있다. SBS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방송사 업무의 특성상 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사원들의 업무 양과 질이 정규직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전국언론노조 MBC계약직지부 이상엽 위원장은 “동일 가치의 노동을 하는 사람은 동일 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적어도 이런 원칙을 위반하는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시계약직을 제외한 비정규직 사원들의 고용불안 문제도 심각하다.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할 수 없게 돼있는 파견직 사원과 기간제(한시) 계약직 사원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고용만기 때면 언제나 불안과 초조함에 빠져든다. 방송사 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은 “파견직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2년이라는 기한 때문에 늘 고용불안이라는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2년이 되기 전에 불리한 조건으로 편법적인 재계약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다수 비정규직은 산업재해 등 각종 사회보장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중 삼중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업무강도 높아 과로사 잇따라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업무강도는 높다보니 일하다 과로로 사망하는 경우가 지난해 만도 4건이나 발생했다. SBS 차량부에 근무하던 이경철씨는 지난 해 4월 28일 출장을 다녀와 집에서 잠자던 중 갑자기 숨졌다. 사인은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 이씨의 유가족은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방송사가 아닌 파견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점 때문에 혜택을 받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사례는 MBC에도 있었다. 운전직종에 있던 조규복씨는 지난해 수해 취재를 다녀온 뒤인 9월 출근했다가 가슴이 아파 입원했으나 3일 만에 숨졌다. 사인은 역시 과로에 의한 심근경색이었다.

방송사 비정규노조의 박신호 SBS지부장은 “운전직종에 있는 파견직 사원들은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장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과속과 주차위반을 감수해야 하고, 출퇴근 시간도 불분명해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떠날 날이 없다”며 “과속이나 주차위반 범칙금도 모두 개인 부담이라 딱지가 날아오면 봉급에서 공제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난 해 7월 KBS 드라마 FD 김성섭씨는 촬영 도중 감전으로 사망했고, 같은 달 EBS의 한 FD도 밤새 편집 뒤 다음 날 숨졌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

이런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데도 비정규직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고용유연성 확보와 비용절감 등 오로지 경영의 차가운 논리와 필요만을 앞세운 결과라는 게 방송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값싼 비용으로 우수한 인력을 쓰면서도 각종 보험 등 복지의 책임은 떠맡지 않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깔려있다는 게 비정규직 사원들의 한결같은 울분이다. 이들은 기본적인 사회보장과, 합리적인 급여수준 등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언론노조 미조직 비정규특위의 박병완 위원장은 “올해는 더 이상 언론사에서 비정규직 인원을 늘리지 못하도록 막고 언론사 중에도 인건비 착취가 극심한 곳은 바로잡을 것”이라며 “파견용역직 사원 채용시 선정과정에 노조가 개입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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