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서울 용산구의 한 의류매장에서 점원을 폭행한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의 갑질로 4월 한 달이 뜨거웠다. 사건에 관계된 1천여건의 언론보도를 살펴보니 주로 3개 주제에 기사 내용이 집중됐다. 먼저 4월 초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의류매장 점원을 폭행하고도 외교관 면책특권에 기대어 경찰 수사 등에 불성실한 뻔뻔함을 지적한 기사를 시작으로, 4월 중순 가해자의 폭행 사실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며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다. 여기에 가해자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점과 벨기에 출신 방송인이 가해자의 폭력행위를 부끄럽게 여겨 우리 국민에게 대신 사과한 사건에 보도가 집중됐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정부 부처는 외교통상부였다. 외교부는 사건이 보도된 이후 4월21일 패트릭 엥글베르트 주한 벨기에 대사관 공관 차석을 외교부 청사로 호출해 가해자인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의 성실한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관계자가 여러 언론보도에 적극 협조하며 “주한 외교단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외교부 입장을 전했다.

사건의 전개 과정과 관련 보도를 살펴보며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사건의 핵심은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고객의 폭행과 폭언 등 갑질 행위인데 어째서 언론은 가해자에만 집중하는가? 그리고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던 정부 부처는 고용노동부인데 어째서 외교부만 그리 바빴던 것인가? 피해 노동자의 입장을 담은 기사는 KBS 뉴스의 4월21자 보도 정도에 그쳤다.

확실히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여느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갑질 고객과 다른 점이 있다. 가해자는 중국 명문대학에서 수학하고 유엔과 유럽연합(EU)에서 근무한 엘리트로 주한 벨기에 대사와 만나 결혼하고 2018년 한국에 왔다. 당시 한 언론보도는 그녀를 기품 있고 온화한 성격으로 묘사했다. 그런 그녀가 180도 돌변해 의류매장 서비스 노동자를 폭행하다니, 왜 그랬을까. 평소 몸에 익혔다는 태극권을 시험해 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가해자의 갑질 행위는 그녀가 벨기에 대사 부인이어서, 혹은 중국인이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재벌 총수들의 갑질을 접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갑질은 부자들이나 일삼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고객이라는 위치와 응대 서비스를 제공해 먹고사는 서비스 노동자라는 지위상의 구조가 필연적으로 갑질을 가능하게 한다.

소비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던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고객은 왕이었다. 1990년대 이후 건물이나 상품 등 하드웨어가 유사한 상황에서 백화점을 비롯해 소매업체들은 경쟁력을 가름하는 중요한 열쇠가 고객 응대 서비스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비스 유통 자본은 너나없이 고객 만족 경영을 내세우며 고객은 항상 옳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는 마케팅 철학을 신봉했다.

서비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상품정보 등을 제공하고 응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까지가 고객이 돈을 주고 사는 서비스인데 아마도 가해자는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인격까지 샀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이런 천박한 소비자 지상주의가 피해 노동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해당 고객도 문제지만 고객만족을 내세우며 노동자의 고통은 등한시하는 사업주 책임도 크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에서 2018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 보호 조항이 신설됐다. 사업주가 소위 ‘진상’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모욕적 언사, 폭력에서 해당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제도화한 것이다.

한국 사회 대다수 언론이 이번 사건에서 엽기적인 가해자의 갑질 행위, 가해자의 국적과 주한 외국 대사 부인이라는 지위에 주목했다. 그러나 갑질 폭행 가해자들은 언제나 벨기에 대사 부인 같은 사람들뿐일까? 안타깝지만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는 나를 비롯한 우리 주변의 무수한 장삼이사들이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갑질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갑질 피해 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보호의무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더 보완할 제도적 과제는 없는지 점검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어느 언론보도도 여기엔 주목하지 않았다.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