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 유해요소 노출로 심장질환아 출산했다면 산재 해당


'태아 건상손상'을 이유로 산재 인정한 최초 판례 


여성근로자가 임신 중 사업장의 유해인자로 인해 태아의 건강이 손상돼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태어난 아이의 질환을 이유로 여성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될까?
 
대법원은 최근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했다(대법원 2020.04.29. 선고, 2016두41071). 태아의 건강손상을 이유로 여성근로자에게 산재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다.

◇ 사실관계

4명의 원고는 제주특별자치도 공공병원인 한라의료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로 이들 모두 2010년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다. 당시 한라의료원 간호사 중 원고들을 포함한 15명이 2009년 임신했는데, 그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원고 이외 다른 5명의 간호사는 유산했다. 이후 간호사의 근로조건·작업환경의 적정성 여부가 노사간 쟁점이 됐고, 노사합의로 2011년 병원 측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원고들은 ‘사업장의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이는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본인이 아닌 자녀는 산재보험법 적용대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결정했다.

이에 원고들은 ‘출산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한다’며 2013년 9월12일 다시 피고(제주도지사)에게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태아의 심장형성 장애 당시 모체의 일부였고, 산재보험법 적용 여부는 질병발생 당시를 기준으로 하며, 발병 이후 근로자 지위를 상실해도 계속 산재보험이 적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원고들은 재해발생 시점을 ‘출산일이 아닌 임신 중’이라고 특정하면서, 임신 당시 의무기록과 ‘선천성 심장질환에 관한 의학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하지만 피고는 같은 해 11월6일 “(원고들에게) 자료보완을 요청했으나 산재보험 초진소견서가 제출되지 않아 고객님(원고들)의 상병명 및 요양기간 등 확인이 불가하다”며 ‘민원서류 반려처분(거부처분)’을 통보했다.


◇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출산(태아가 모체에서 분리된 이후)으로 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이 상실되는지 여부다.


태아의 건강손상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서울고법은 “원고들이 임신 중에 작업환경의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하여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하였다고 하더라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16.5.11. 선고, 2015누31307 판결).

위해인자노출 심장질환아 출산은 산재에 해당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母)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한다”고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특히 ▲산업재해의 위험을 당사자 일방에게 전가하지 않고 공적보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분담하도록 하기 위한 산재보험제도의 목적을 환기시키며, ▲원고들이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지게 되는 경제적 책임과 정신적 고통 ▲사업주가 과중하게 져야 할 보상비용의 부담을 근거로 “임신한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켜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근로자는 물론이고 사업주에게도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산으로 여성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이 상실되는지 여부

원심은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는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본인에 한정되고, 출산아와 별도의 인격체인 원고들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관련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원심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해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거부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여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산재보험법 제88조 제1항은 “근로자의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퇴직하여도 소멸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여 보험급여 수급과 관련한 기초적 법률관계가 성립한 이상, 근로자가 그 후로 근로자의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이러한 보험급여 수급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 대법원 판결의 의의

원심의 판단대로라면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는 태아가 모체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하여 여성근로자에게 요양급여 수급권을 인정하다가, 여성근로자의 출산 이후에는 모체와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 출산아의 선천성 건강손상에 관하여 수급권을 부정”하게 된다.

원심의 이같은 판단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 한다’는 우리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에도 위배된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34조 제2항, 제6항에 의한 생존권적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헌법 제32조 제4항에 의한 여성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차별금지, 헌법 제36조 제2항에 의한 모성보호의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의 모성보호 의무 및 여성근로자에 대한 특별 보호를 규정한 헌법 및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산업안전보건협약’ 등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볼 때, 업무상 원인으로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태아가 ‘모체와 분리될 수 없는 동일체’임을 근거로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이를 유산한 경우와 달리 산재보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산재보험제도 취지와 목적에 충실하고, 국가의 모성보호 의무 및 여성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규정한 헌법 정신을 충실히 반영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해, 근로자의 임신 중 업무상 사유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미숙아, 선천성 장애 및 질환아 출산 포함)’을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키는 등 제도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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