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2009.10.23. / 한겨레]

 

지역 노사정협 ‘1호’ 부천…‘풀뿌리 고용해법’ 새 모델로

 

[실업급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⑧ ‘지역 고용 거버넌스’

 

 

 

 

» 지난 2007년 10월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가 주최한 워크샵에서 참가자들이 사업의 성과와 방향에 토론하고 있다. 10년간 지속해온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 제공

외환위기로 중소업체 줄도산하자 힘 합치기로
지역사정 잘 알고 영세업체까지 아우르는 장점
꺼리던 사업주도 ‘교육훈련’ 내세우자 적극 참여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우주엔비테크 부천사업소의 배명만 노동조합 위원장은 올해 회사 쪽에 색다른 제안을 했다. 노사발전재단이 지원하는 ‘노사 파트너십 향상 과정’에 함께 참여하자고 한 것이다. 배 위원장이 혼자 끙끙대며 지원서를 만들 때만 해도 시큰둥했던 회사 쪽은 막상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우리한테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노사 파트너십 향상 과정은 원래 협력적 노사관계를 다지기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부천사업소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주엔비테크는 생활폐기물 소각시설을 운영하는 업체다. 부천에도 삼정동과 대장동 두 곳에 소각장이 있다. 그런데 올 들어 부천시가 신재생에너지인 ‘가연성 폐기물 고형연료’(RDF)를 쓰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 위탁계약이 만료되는 대장동 소각장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기존 사업을 잃게 된 회사 쪽은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따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노조 쪽은 40여명의 조합원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몰렸다. 노사 대립도 격렬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노사 파트너십 향상 과정이 새로운 모색을 가능하게 했다. 노조의 제안으로 프로그램 안에 ‘가연성 폐기물 고형연료’ 관련 교육훈련을 넣었다. 노동자들에겐 새로운 기술을 익혀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사는 숙련된 노동자를 앞세워 입찰 수주의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회사 쪽은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지만, 노조 쪽은 막연한 고용 유지 요구보다는 좀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접점을 찾았다.

 

이런 아이디어가 배 위원장 혼자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배 위원장은 “노사 공동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알게 됐고,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도움을 줬던 고현주 부천노사공동 직업훈련지원센터장은 “부천지역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 노사정협의회가 만들어져 있으며, 지역경제 관련 사안은 노사정이 함께 논의해 풀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며 “이런 철학이 우주엔비테크에도 전파된 셈”이라고 말했다.


» 부천에 위치한 중소기업인 신한일전기의 노동자들이 전기설비 회로도 실습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가 만든 노사공동 직업훈련 지원센터에서는 4년 동안 부천지역 업체들의 수요에 맞는 교육훈련을 기획해 실시해오고 있다.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 제공

부천지역은 주로 금형·전기전자 업종의 중소·영세 제조업체들이 지역경제를 밑받침하고 있고, 노조 조직률도 10%에 못미칠 정도로 낮다. 1999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영세 업체들이 줄도산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을 맞자 노조도, 사업주도, 시도 ‘각자의 힘만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공통된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

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천지부와 부천상공회의소, 부천시 등이 주체가 되어 부천시장을 위원장으로 삼고 노사정 3자가 참여하는 10명의 노사정협의회 위원회를 만들어냈다.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실무협의회도 뒀다. 아직 평가하기에 이르지만, 지난 10년 동안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는 택시업종협의회와 같은 각종 업종별 협의회를 설치하고 운영해 왔으며, 노사갈등 조정과 지역 노동시장 연구 등 의미있는 성과물을 내왔다.

 

특히 4년 전부터는 ‘인적자원개발’을 주제로 삼아 지역고용 활성화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노사정협의회의 결의에 따라 노사공동 직업훈련 지원센터를 만들고 부천시 중소·영세 기업을 위한 맞춤형 직업훈련과 취약계측을 위한 직업능력 개발사업을 펼쳤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운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지역에서 수요가 많은 금형·전기전자 분야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펼치거나, 중소업체에 취업할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분야가 아닌 경리·회계·영업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사업체들의 인력 수요, 교육훈련 기관 등 부천지역에 있는 일자리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취합해 하나로 묶어내는 ‘직업훈련 정보네트워크’ 구축사업에도 착수했다. 천인기 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사업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꺼렸으나, 이제는 ‘노조가 없는 기업엔 교육훈련이 부족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정책과는 별도로 지역 단위에서 지역경제의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나름의 해법을 찾는 것을 ‘지역 거버넌스’라고 부른다. 특히 전문가들은 일자리 문제를 풀 해결책의 하나로 ‘지역 고용 거버넌스’에 주목한다. 지역의 주체들이 해당 지역의 일자리 수급 상황을 가장 잘 꿰뚫고 있어 중앙정부의 정책이 닿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대기업에 치중하지 않아 중소기업 노사 모두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천을 지역 고용 거버넌스가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당사자들도 “아직 멀었다”는 반응이다. 초창기부터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에 관여했던 심재정 부천지역노동교육상소장은 “아직까지 지역 노사정의 역량과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며, 지역 경제정책과 재원의 부재, 중앙정부 위주의 고용정책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부천지역은 앞으로 지역 고용 거버넌스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런 수준도 찾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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