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들날은 언제일까 수원 인근의 한 휴대폰 부품 하청업체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김영희·이진숙·박혜경씨(가명·왼쪽부터)가 철야근무를 마치고 지난 4일 오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의 고단함보다는 내일의 불투명함이 어깨를 짓누른다”고 했다.

 

‘철야 근무’ 3인이 털어놓은 파견노동 실상

 

지난 4일 오전 8시, 경기 수원전철역 앞 식당. 한줄기 소나기를 뚫고 여성 근로자 3명이 들어섰다. 김영희(40)·이진숙(40)·박혜경(21·이상 가명)씨. 전날 저녁 8시30분에 작업을 시작해 이날 오전 7시30분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들른 참이었다. 철야만 하는 생활에 길들여진 듯 피곤함은 눈치챌 수 없었다. 3명이 일하는 곳은 삼성전자, LG전자에 휴대전화를 납품하는 ㅇ사다. 휴대폰 부품을 주로 레이저로 용접하고, 조립·포장·검사도 한다. 식사시간 1시간을 빼고 하루 10시간씩 일한다. 소주가 반주로 곁들여졌다. 밤새 쌓인 피로를 푸는 참이었다. 김씨는 파견노동 경력 6년이고, 이씨는 10년이 넘는다. 박씨는 3년차다. 이들은 휴대전화 키패드, USB 등 안 해본 게 없을 만큼 숙련된 노동자다. 그러나 늘 해고불안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일이 꾸준하지 않다. 시급은 더도 덜도 말고 딱 4110원으로 맞춰졌다. 근속수당도 없고 몇년 일해도 똑같다. ㅇ사는 그나마 상여금 100%를 준다. “상여금도 먹고 튈까봐 한번에 안 주고 1년에 12회로 나눠 줘요. 그렇게 해서 매월 6만9000원을 받아요. 그마저도 결근 없이 날짜를 다 채운다는 조건이고요.”(김씨), “회사가 어떻게든 깎아요. 조퇴 3번이나 지각 3번 하면 ‘결근’ 처리합니다. 2~3분만 늦어도 30분 지각으로 해버려요. 2~3분에 시급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죠.”(이씨)

 

회사의 노동력 착취는 철저하다. 이씨는 “출근카드도 남들이 대신 찍을 수 있다며 3년 전부터 지문인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주말도 맘껏 쉬지 못한다. 바쁜데 쉰다고 하면 (업체가) 싫어하고, 특근에 응하지 않았다며 훗날 해고 명분이 된다. “휴일 3번 일해도 하루만 특근으로 쳐줘요. 여름휴가도 휴일 끼고 이틀만 갑니다. 어떻게든 깎겠다는 거죠. 급여를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한 만큼만이라도 달라는 건데 계속 근로자만 당해요.”(김씨)

 

크고 작은 산업재해를 겪지만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다. 이씨는 “기계에 손가락이 찍혔지만 말도 못한 채 슬쩍 나와 혼자 약을 바른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훗날 정규직이 될 수 있으면 4대보험에 들겠지만, 어차피 오래 못 다닐 건데 보험료 아까워 한푼이라도 돈으로 더 받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20100813_01300104000002_04L.jpg

 

김씨는 “사실상 월 200만원을 벌어도 실제로는 180만원만 받는다. 20만원은 파견업체가 가져간다”며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매달 떼어간다”고 말했다. 평일 잔업 때 심야수당은 대개 시급의 1.5배다. 하지만 실지급액은 1.25배다. 나머지는 파견업체 몫. 박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받다보니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어쩐지 모집광고에 월 210만원도 가능하다던데 한번도 받아본 적 없다. 고정적으로 떼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며 놀랐다. 파견노동자는 대부분 근로계약서도 안 적고 이력서만 내면 끝이어서 하소연하기도 쉽잖다.

 

처음에는 박씨처럼 단지 ‘직업알선소’ 정도로만 안다. 김씨는 “처음에 인터넷 보고 이력서를 냈는데, 차에 태워서 다른 데(사용업체)로 데려가기에 인신매매당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마음대로 쓰다 필요 없다 싶은 때는 매몰차게 내친다. 언제든 값싸게 계산, 거래되는 ‘상품’ 같은 존재다. 김씨는 5차례, 이씨는 10여차례 직장을 옮겼다. “사직서도 없이 문자메시지 하나 달랑 받으면 끝이에요. 겨우 1시간 남겨놓고 ‘오늘 일 없다’는 메시지만 오기도 해요. 그 사이 다른 일도 못하죠. 출근했다가 일 없다고 1시간 만에 돌아온 적도 있어요. 바쁠 때는 막 뽑다가, 일 없으면 마구 잘라 늘 조마조마해요. ‘단물’ 빠지면 그냥 버리는 일회용품이지요.”(이씨)

 

법정 최저임금이 내년부터 시급 4320원으로 올랐지만 반기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사실 큰 기대 안 해요. 형편 어렵다고 또 뗄 겁니다. 그럴 때는 딴소리 못하게 ‘동의서’를 받아요. 사인 안 해줄 수도 없고. 진짜 ‘짜요’.”(이씨)

 

얘기가 깊어가자 야근이 몸에 밴 선배들은 거뜬했지만, 어린 박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고 몸을 반쯤 뉘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파견노동자의 고단한 아침은 그렇게 저물었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