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뉴스

우리는 한해 2500명, 하루 6.8명꼴로 죽어나가는 전쟁터에 살고 있다. 북한의 위협으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지만, 정작 이 땅에서 매일같이 치러지는 유혈낭자의 전투에 대해선 대부분이 무감각하다. 우리는 며칠 전 또 하나의 패전보를 받아들었다. 이번엔 전남 여수였다. 폭발음과 함께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나가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6명의 전사자와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유독물질 누출, 건설현장 붕괴, 가스 폭발, 암 발생…. 일터에서 땀흘리며 나라경제를 떠받쳐온 이들이 이토록 허무하고 억울하게 죽어나가는데도 잠깐씩의 호들갑 이상의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업주들은 기껏해야 벌금이나 내고 마는 이유는 뭘까. 전투에 내몰린 이들이 목소리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는 이들은 관리직이 아닌 생산직이요, 그나마 비정규직이거나 하청업체 노동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관대작의 아들딸이나 형·동생이 폭발사고로 사지를 잃거나 유독물질에 노출돼 사경을 헤매거나 안전장치 부실로 추락사해도 대응이 이처럼 미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따져보면 오래된 현상이다. 1960~70년대 이후 이른바 산업화 시대에 경제성장을 최선의 가치로 받들면서 인간 자체는 하위 가치로 밀려났다. 수많은 노동자가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골병이 들고 안전관리 부실로 손가락이 잘리고 쇳더미에 깔려 압사해도, 경제성장을 위한 성장통 정도로 치부됐다. 몸으로 성장을 떠받친 노동자들의 고통은 성장의 과실을 입에 문 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노동기본권이나 산업안전 따위는 불온한 요구사항일 뿐이었다.

그 결과 기형적인 사회가 형성됐다. 경제적 수치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수위를 다툰다. 세계적 기업이라는 삼성이 안전관리 측면에선 후진국 삼류 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불산 누출 사고가 난 삼성전자 화성공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을 1934건이나 위반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문제는 문제제기가 이뤄진 뒤 7~8년이 지난 이제야 겨우 협상 테이블에 올려지는 시민권을 얻었을 뿐이다. 그나마 첨단 스마트폰 ‘갤럭시에스(S)4’에 쏟아지는 환호 속에 삼성전자 공장의 후진성은 쉽게 잊혀진다.

이런 비대칭은 일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인식은 일상으로도 확대됐다.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이고 고공 작업이 이뤄지는 바로 옆으로 시민들이 태연히 걸어가는 게 세계적 도시 서울의 모습이다. 미국에서 봤던 공사현장 풍경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겨우 맨홀 공사일 뿐인데 반경 20~30m를 접근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시민들은 그 접근금지선보다 한참을 에둘러 지나갈 만큼 미국인에게는 안전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행복의 전제조건으로 안전을 유독 강조한다. “국민안전과 경제부흥을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그의 ‘국민안전’이란 말에 이 전쟁 같은 일터와 일상의 불안에 대한 문제의식도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을 경제적 성취의 하위 가치로 전락시킨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과오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는지 궁금하다. 한해 2000명씩 죽어나가는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확대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강력한 제재와 처벌을 가하는 게 요체다. 물론 기업들은 ‘경제부흥’을 강조하며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해묵은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들고나올 것이다. 박 대통령의 답은 무엇일까. 국민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

박용현 사회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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