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뉴스





대기업 정규직인 김모씨(34·여)는 올해 여름 딸을 낳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기는 병치레가 잦았다. 그가 6개월간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동료들은 말렸다. 복직하면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거나 주요 업무로부터 배제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그래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김씨 회사에서 육아휴직 신청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법제도만 놓고 보면 선진국 못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에는 산전후 휴가는 출산 전·후에 도합 90일, 1세 미만 영아를 둔 근로자에게 최장 1년간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다. 현실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외환위기 이후 인력감축으로 각 기업마다 인력운용이 빠듯한 데다 고용불안 때문에 근로자들이 선뜻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뭄에 콩나듯 사용되는 육아휴직도 대기업 위주라서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에게는 딴나라 얘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승아 한국여성개발원 박사는 “산전후휴가·육아휴직을 꺼리는 문화는 결국 여성 임금근로자 중 70%가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1.08명)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육아휴직제도를 운영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출산율이 3배에 이른다.

◇ 눈치보이는 임신과 출산

노동부가 올해 1·4분기 산전·후 휴가자 1,066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64.4%가 육아휴직을 희망했지만, 그중 34.1%는 휴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직장분위기, 복귀불안 등 직장 내부문제(80%)가 압도적이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직장생활 10년차다. 올해 11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회사가 산전후휴가는 물론이고 육아휴직도 허용하지 않는다.”(강모씨·31세)

“산전후휴가까지 아직 5개월이 남았지만 회사에서는 벌써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하라며 사실상 퇴직을 권고하고 있다.”(오모씨·30세)

“사측에서 ‘우리같은 중소기업에서 산전후휴가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한다’고 하는데 딱히 항의하기도 어렵다.”(김모씨·28세)

아예 출산 및 육아휴직이 승진 및 채용에 불이익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한적십자사 동부혈액원은 지난 7월 육아휴직 중인 곽모씨(29)를 5급 승진대상에서 제외시켰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평등권 침해’라는 시정권고를 받았다.

기업들도 할 말이 있다. 중소기업 ㄷ사의 인사담당자는 “휴직기간 동안 새 인력을 채용할 경우 3개월간 업무숙련기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달갑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같은 대체인력 문제를 해소하려 지난달 약 6,000명 규모의 육아휴직 대체인력 네트워크 서비스에 들어갔지만 정착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 양극화 현상 뚜렷

전체 여성임금노동자의 70% 규모로 추정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8년간 현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속한 양모씨(34·여)는 최근 육아휴직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전문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회사에 기대를 접고 이 참에 그만둘 생각이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내가 공들여 쌓은 기술과 관계없는 단순직종을 택해야 할지 모른다”며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놨다.

한국여성민우회 박정옥 팀장은 “기간제 여성근로자의 경우 임신 4개월 무렵쯤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으며 사측에서 다른 이유를 대면서 계약갱신을 거부하면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학습지교사·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 여성의 경우에는 산전후휴가조차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모 학습지 교사로 6년째 일해온 이애영씨(29)는 두달전 아들을 출산하고 사측과 ‘계약을 중지’한 채 완전무급으로 일을 쉬고 있다. 그는 “학습지 교사 업무가 워낙 고돼 자연유산하는 동료가 빈번하지만 사측은 배려는커녕 업무차질로 인한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손영주 사무처장은 “해결책이 마련되기는커녕 조만간 비정규직 보호법 발효를 앞두고 ‘비정규직 직접고용’에서 도급 등 간접고용 형태로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불안이 심화될수록 임신·출산 기피현상도 심해져 노동력 재생산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육아휴직 왜 기피하나

육아휴직은 내년부터 급여가 현재 월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오르고, 2008년부터는 휴직 대상자녀 연령이 만 1세 미만에서 만 3세 미만으로 확대된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쉽다.

전기영 변호사(35·여)는 “주변에 육아휴직으로 고민하는 친구들은 당장 소득감소를 걱정한다”고 말한다.

“요즘 가정 경제구조는 맞벌이가 필수가 된 상황입니다. 만약 주택구입이나 전세금 대출이라도 받으면 부부 중 한사람의 수입은 고스란히 은행 채무변제로 들어가는데, 이런 집에서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처럼 저출산을 고민하는 독일의 경우 내년 1월부터 출산으로 직장을 쉬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할 경우 손실 수입의 3분의 2, 최대 월 1,800유로(약 2백16만원)를 최장 12개월까지 국가가 보조하는 새 육아수당 제도를 실시한다. 아내가 전업주부일 경우에도 월 300유로(36만원)를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여성노동협의회 손영주 사무처장은 “우리도 육아휴직급여를 최소한 여성가장채용장려금 등 다른 장려금처럼 60만원으로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고용안정 정책도 요구된다. 노동부가 비정규직 여성을 위해 내놓은 ‘출산후 계속고용지원금’ 제도는 처음 실시된 지난 7월부터 넉달동안 수혜자가 단 1명에 불과했다. ‘임신 34주 이상, 또는 출산휴가 중인 비정규직 여성’을 바로 재고용해야 사업주에게 매달 40만~60만원을 보조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이다. 노동부는 ‘34주 이상’ 요건을 16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남성의 육아휴직도 적극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원강사 윤태관씨(34)는 “출산과 육아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을 감안해 아빠들에게도 1~2개월가량의 ‘파파쿼터제’(육아휴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해외 육아휴직은?···보조금·복직보장에 아빠도 휴가

프랑스 휴대전화 회사 SFR의 직원인 멜리스 스토는 올해초 셋째, 넷째아이인 쌍둥이를 낳고 지난 8월까지 육아휴직을 보냈다.

“육아휴직 때문에 직업경력 손해날 걱정은 안해도 되거든요.”

프랑스는 자녀가 3살이 될 때까지 시간제근로를 하거나 휴직한 뒤 다시 원래 업무로 복귀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94로 유럽에서 아일랜드(1.99)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저출산을 극복한 비결은 정부의 적극적인 모성휴가 및 육아비용 지원이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목표치인 2.07에 미치지 못하자 지난 7월부터 셋째아이를 낳는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면 매달 750유로(약 9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덕분에 프랑스의 공원은 여타 유럽국과 달리 노인이 아닌 아이들로 넘쳐난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지난해 가임여성 출산율이 1.25로, 5년 연속 전년도 출산율을 밑돌았다. 심각한 소자화(少子化·저출산) 현상을 막으려 일본 정부는 1994년부터 각종 대책을 마련했지만 효과를 못봤다. 장기화된 불경기에다 엄청난 재정적자 영향 때문에 지원이 여의치 않다. 최근 최대 통신회사인 NTT는 자녀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고 부양수당을 지급하는 등 대기업 위주로 대책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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