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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상담 홈페이지에 올라온 통상임금 상담
ⓒ 노동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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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판결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회사에서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켜야 하지 않나요?" (노동자)
"예 그렇습니다. 정기적·고정적 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상담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요구를 회사에서는 거절했습니다. 혼자서 소송할 수도 없고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로 신고하면 어떨까요?" (노동자)
"…." (상담원)

노동자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상담원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필자가 일하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에서 전화 상담 도중에 벌어진 풍경이다.

'통상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다. 보통 '기본급'과 '직책수당', '자격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각종 수당 산정의 기준임금이 되기 때문이다. '초과근로수당'이 대표적인데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연장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50%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대구의 한 버스업체 노동조합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적 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회사가 연장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계산할 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산정하라'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임금채권이 소멸시효는 3년이다. 회사가 그동안 상여금이 빠진 통상임금으로 수당을 지급했으니, 3년 치에 대해서는 상여금을 포함시켜 차액을 노동자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이른바 소급적용이다.

회사가 이를 거부할 경우 원칙대로라면 노동자들이 법원 판례를 근거로 회사를 고용노동부에 고소할 수 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더 받을 수 있었던 연장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밀린 임금'으로 간주하여 '체불임금 진정'을 하는 것이다.

대법원 "정기적 상여금은 통상임금"... 고용노동부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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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
ⓒ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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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원과 다르게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라는 행정규칙(고용노동부 예규 47호)을 들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 지침을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근로감독관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줄 리 만무하다. 기업 역시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근거로 상여금의 통상임금 성격을 부정하고 있다. 결국 방법은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법원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개별 노동자에게 변호사 선임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소송을 권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상담원은 노동자에게 똑부러지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최고법원의 판결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 탓에 노동현장은 이렇듯 혼란의 연속이다.

2/4분기(4월~6월) 부천상담소의 노동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812건의 상담내용 중 통상임금에 대한 문의가 포함된 '체불임금' 상담이 362건으로 전체 상담의 약 45%를 차지했다. 전화 및 방문상담 그리고 인터넷 노동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체불임금 상담은 노동자가 보통 지급받지 못한 임금의 계산이나, 고용노동부에 제출할 '체불임금 진정서' 작성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2/4분기에는 유독 통상임금에 대한 상담이 두드러졌다.

통상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은 상담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노동OK'(www.nodong.kr)를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지역 구분 없이 14만 명이 회원이 가입해 있는 '노동OK'는 웹사이트를 분석하는 랭키닷컴의 '직장인 커뮤니티' 부문 1위의 사이트다. 주로 개별 노동자들이 상담해오는 만큼 전국적 노동현안에 대한 평범한 노동자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2/4분기 통상임금에 대한 상담은 20건으로 1/4분기의 9건에 비해 2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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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윌러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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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은) 한국 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

지난 5월 8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대니얼 애커슨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회장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앞서 에커슨 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통상임금 소송 해결에 한국정부가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금속노조 한국GM지회는 회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지난 3년간의 초과근로수당을 새로 지급하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 따라 한국GM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상여금을 포함하여 재산정한 통상임금 미지급액은 8000억 원에 이른다.

노동계와 야당은 박 대통령의 답변을 두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소송의 관계자인 GM회장의 요구에 굴복한 '굴욕외교'이자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한 처사"라고 규탄했다. 덕분에 통상임금은 핫이슈로 떠올랐고 덩달아 부천상담소로 통상임금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대기업 노조만 배불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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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대기업 정규직 배불리기?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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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와 일부 보수언론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 사업장이 높은 상여금을 받고 있으며 연장근로와 휴일특근이 일상화된 탓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임무송 고용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은 지난 7월 9일 법무법인 지평지성 주최로 개최된 세미나에서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킬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실시한 '통상임금 관련 실태조사'를 보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노총이 지난 5월 27일부터 31일 사이에 소속 사업장 100여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임금구성은 기본급 비율이 42.6%, 정기상여 비율 24.43%, 연장·야간·휴일수당 17.13% 순이었다.

중소규모 사업장이 집중된 한국노총의 조직구성을 고려하면 보통의 기업들 역시 상여금과 초과근로의 비중이 전체 임금에서 결코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성호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상담실장은 통상임금 문제는 "임금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고 각종 수당으로 이를 은폐해온 불합리한 임금구조의 문제"라며 "기본급을 낮게 책정할 목적으로 지급했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임금부담으로 기업들이 자연스레 초과근로를 줄이는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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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임금 문제에서 소외된 비정규직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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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용노동부의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반영될 경우 이로 인해 벌어지는 임금격차로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박탈감은 상당할 것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대기업 노조 배불리기'라는 보수언론의 선동이 먹히는 이유다. 노동계 일각에서 "대기업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으로 지급받을 임금 소급분을 비정규직 연대기금으로 내놓자"는 주장도 나온다. 진지하게 새겨들을 일이다.

그럼에도 통상임금 문제가 '대기업 노조 배불리기'라고 외면하기에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크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나 야간근로수당만이 아니라 출산전후 급여와 연차수당, 육아휴직수당의 산정 기준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의 판례에도 불구하고 개별 노동자들이 사측에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켜줄 것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노조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은 대부분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GM 노조를 비롯하여 100인 이상의 사업장 중 통상임금 소송이 제기된 곳이 135곳이다(5월 말 기준). 대부분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으로 노조가 주도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임금 소송 지원에 나선 양대노총... 격렬히 반대하는 경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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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통상임금 소송 Q&A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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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으로 육아휴직 수당을 책정할 것을 주장하며 개별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용감한 노동자도 더러 있다. 노조가 없거나, 있더라도 통상임금 소송에 소극적인 사업장은 뜻이 맞는 동료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앞서 민주노총은 5월 14일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개별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역시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통상임금의 쟁점'에 관련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통상임금 문제의 가장 근본적 해결방법은 고용노동부가 정기적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반영하여 행정지침을 바꾸는 것이다. 법학자들 중 상당수도 고용노동부가 사법부의 판례를 존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아직까지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행정지침을 바꿀 계획이 없다.

한편 경영계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처럼 '1금 지급기(한 번 임금을 지급하는 기간, 월급제의 경우 한 달)'를 넘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 1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을 비롯한 71개 전국상공회의소 의장은 공동명의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 촉구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공동건의'를 발표했다. 이들은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될 경우 "중소기업은 존폐의 위기를 겪을 것은 물론 대기업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며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1개월을 넘어 지급되는 금품은 명확히 제외되도록 법령을 개정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부천상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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