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심재정 2005.04.07 12:17
http://www.nodong.or.kr/406897 조회 수 11894 추천 수 6 댓글 0
노동자들은 사업주로부터 ‘고용이 유연화 돼야 회사가 살 수 있다’는 논리로 구조조정을 강요받고 있다. 굳이 경영이 어렵지 않은 회사의 사업주들도 ‘고용의 유연화’라는 말을 자주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기 키워드인 것이다. 고용의 유연화를 쉽게 풀어보면, ‘사람을 자른다’는 뜻이다. 해고, 특히 정리해고의 기준과 방법이 엄격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고용의 유연화와 함께 또 다른 인기 키워드가 있다. ‘임금의 유연화’라는 말이다. 연공서열식의 기존 임금관행과 비교해 임금의 결정과 지급이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구체적인 동의가 없는 임금삭감 및 조정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임금을 부드럽게 해’ 사실상 임금조정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임금의 유연화는 노동자들에게 연봉제, 성과급제 등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물결로 다가왔고, 사업주들은 연봉제와 성과급제의 도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당정도 조정할 수 있었다.

임금피크의 시기와 정년이란 알맹이 빠져.

임금의 유연화와 관련된 최근의 또 다른 키워드는 ‘임금피크제’이다. 현재 일부 사업장에서 시행되는 임금피크제는 노사합의로 일정 연령시기의 임금을 최고(피크)임금으로 받고 그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임금을 줄여 정년까지 근무하는 이른바 ‘정년보장형’ 제도가 대부분이다. 주로 공기업이나 금융권 등 고액임금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2003년부터 시작됐고 올해에는 더욱 확대될 추세다. 경총은 올해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도의 확산을 회원사에 주문까지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임금조정액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노동자에게 임금조정지원금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임금피크제의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피크의 시기와 노동자의 정년이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의 정년이 형식적으로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며, 사업주가 임의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력한다’는 규정은 단순한 권장사항에 불과하며 기업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실상의 면책규정일 뿐이다.

임금삭감이나 정리해고제 대체수단으로 악용

일본의 경우 60세 정년이 법적 의무사항이다.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기존의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60세 정년 이후 재고용과 근무연장을 통해 65세까지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은 1996년 24%에서 2004년 68%까지 늘었다. 일본은 정년 60세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60세 정년퇴직 후 고용을 더 연장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고용연장형 임금피크제의 확산을 통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현실로 돌아오면, 법적 정년이 의무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임금피크제의 추진은 결국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의 확산만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노동자에게 ‘정년까지 좀 더 근무할 것이냐, 임금을 줄일 것이냐’라는 선택만을 강요하게 된다. 교육비, 의료비 등의 생계비가 가장 많이 소요되는 시기인 50대의 노동자들에게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는 결국 사업주에게 임금삭감의 효과를 증대시키거나 고령 노동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해 정리해고의 대체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리고 재계가 총대를 매고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에 대한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은 결국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조기퇴직만을 강요하는 꼴이 돼 정부의 고용정책과도 맞지 않다.

높아지는 근로자의 고용안정 욕구, 고령화 사회 추세 등에 비춰볼 때 무분별한 임금피크제 추진에 앞서 노동자의 정년부터 법적 의무사항으로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소장 심재정

[ 매일노동뉴스 / 2005년 04월 07일] <노동법119>

Who's 심재정

profile

일하는 사람이 당당할 수 있는 사회, 진실을 향한 작은 용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 노동OK
032-653-7051 /   nodong1234@paran.com
http://www.facebook.com/jaejeong.sim


List of Articles
카테고리 제목 조회 수
시론 '검투사 샐러리맨을 위하여' file 820
노동법 수습, 신입해고 이렇게 대응합시다. file 2790
노동법 초단시간 노동자 수 역대최고. file 2175
노동법 2015년 최저임금 이건 알고 가자~ file 4055
노동법 한겨레 8월 27일자 [세상 읽기] 백혈병 산재 판결과 기울어진 법정 / 정정훈 2655
시론 소득주도 사회와 생활임금 1412
노동법 무급 휴직명령의 정당성 20405
노동법 유니온샵과 사용자의 해고의무 15800
시론 노블레스 오블리주 17903
시론 노동절에 대한 짧은 생각 13267
노동법 월급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지 13632
시론 샐러던트(Saladent) 민심 13267
시론 남편의 출산휴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13610
시론 해고이야기 ... 바쁠수록 돌아가자 10492
노동법 노사관행에 의한 근로조건과 변경요건 13498
노동법 장시간근로시 휴게시간 부여 기준이 명확해야 1 27677
노동법 대체휴일이 유효하기 위한 요건 14062
노동법 하청사 임금 원청사에 청구할 수 있나? 12134
노동법 당직근무에 대해 연장·휴일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나 1 20553
노동법 연차유급휴가 사용가능일수보다 부족한 기간을 근무하고 퇴직한 노동자의 연차수당 4 14134
노동법 연봉총액에 포함된 퇴직금에 대한 노동부의 태도를 질타하며... 1 30616
노동법 퇴직금 계산시 특별한 경우의 평균임금 산정 12333
시론 경비원 김씨 아저씨 1 12080
노동법 임금피크제 도입 이전 정년 법제화해야 11894
시론 실업률 3.5%, 믿으시나요? 10516
노동법 체불임금정책, 지연이자제도 만으로는 부족하다 11727
노동법 노동관행이 근로계약으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 13247
시론 팬택의 노사와 부천시의 노사 11443
노동법 경영성과급여와 개인성과급여의 임금여부 14618
시론 '퇴직금제도의 새로운 변화'에 부쳐 11504
노동법 회사의 부도·폐업시 해고수당 못 받나 19027
시론 주5일제의 명암 11156
노동법 연월차휴가의 근무일 대체사용에 대해 13253
시론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은 옳은가? 11298
시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해야 9552
노동법 전직금지 계약과 직업선택의 자유 12757
시론 나의 투표 기준 9943
시론 기업과 노동조합의 정치자금은 동일한가 10239
노동법 상여금 매월 균등분할 지급시 통상임금 포함여부 3 18664
시론 위장취업자과 청년인턴 10381
시론 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11220
노동법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 문제없나? 11134
시론 용돈연금으로 전락하는 국민연금 10425
시론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의지 있나 10754
시론 근로자 자녀 양육문제는 지역사회의 몫 10507
시론 이건희 회장보다 내가 행복한 이유 10471
시론 시급 2,510원의 경제학 9825
시론 더 이상 미룰수 없는 비정규직 문제 94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