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심재정 2005.04.07 12:17
http://www.nodong.or.kr/406897 조회 수 11868 추천 수 6 댓글 0
노동자들은 사업주로부터 ‘고용이 유연화 돼야 회사가 살 수 있다’는 논리로 구조조정을 강요받고 있다. 굳이 경영이 어렵지 않은 회사의 사업주들도 ‘고용의 유연화’라는 말을 자주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기 키워드인 것이다. 고용의 유연화를 쉽게 풀어보면, ‘사람을 자른다’는 뜻이다. 해고, 특히 정리해고의 기준과 방법이 엄격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고용의 유연화와 함께 또 다른 인기 키워드가 있다. ‘임금의 유연화’라는 말이다. 연공서열식의 기존 임금관행과 비교해 임금의 결정과 지급이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구체적인 동의가 없는 임금삭감 및 조정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임금을 부드럽게 해’ 사실상 임금조정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임금의 유연화는 노동자들에게 연봉제, 성과급제 등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물결로 다가왔고, 사업주들은 연봉제와 성과급제의 도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당정도 조정할 수 있었다.

임금피크의 시기와 정년이란 알맹이 빠져.

임금의 유연화와 관련된 최근의 또 다른 키워드는 ‘임금피크제’이다. 현재 일부 사업장에서 시행되는 임금피크제는 노사합의로 일정 연령시기의 임금을 최고(피크)임금으로 받고 그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임금을 줄여 정년까지 근무하는 이른바 ‘정년보장형’ 제도가 대부분이다. 주로 공기업이나 금융권 등 고액임금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2003년부터 시작됐고 올해에는 더욱 확대될 추세다. 경총은 올해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도의 확산을 회원사에 주문까지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임금조정액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노동자에게 임금조정지원금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임금피크제의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피크의 시기와 노동자의 정년이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의 정년이 형식적으로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며, 사업주가 임의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력한다’는 규정은 단순한 권장사항에 불과하며 기업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실상의 면책규정일 뿐이다.

임금삭감이나 정리해고제 대체수단으로 악용

일본의 경우 60세 정년이 법적 의무사항이다.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기존의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60세 정년 이후 재고용과 근무연장을 통해 65세까지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은 1996년 24%에서 2004년 68%까지 늘었다. 일본은 정년 60세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60세 정년퇴직 후 고용을 더 연장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고용연장형 임금피크제의 확산을 통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현실로 돌아오면, 법적 정년이 의무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임금피크제의 추진은 결국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의 확산만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노동자에게 ‘정년까지 좀 더 근무할 것이냐, 임금을 줄일 것이냐’라는 선택만을 강요하게 된다. 교육비, 의료비 등의 생계비가 가장 많이 소요되는 시기인 50대의 노동자들에게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는 결국 사업주에게 임금삭감의 효과를 증대시키거나 고령 노동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해 정리해고의 대체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리고 재계가 총대를 매고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에 대한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은 결국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조기퇴직만을 강요하는 꼴이 돼 정부의 고용정책과도 맞지 않다.

높아지는 근로자의 고용안정 욕구, 고령화 사회 추세 등에 비춰볼 때 무분별한 임금피크제 추진에 앞서 노동자의 정년부터 법적 의무사항으로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소장 심재정

[ 매일노동뉴스 / 2005년 04월 07일] <노동법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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