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심재정 2004.04.22 00:00
http://www.nodong.or.kr/406885 조회 수 12711 추천 수 1 댓글 0

“벤처 IT회사에서 2년간 기술연구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회사의 전망도 불투명하고 임금도 형편이 없었는데, 동종업체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고 고심끝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동종업체에 취업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종전회사에서는 입사당시 약속한 ‘퇴직후 5년간 동종업계 취업금지’ 서약서를 빌미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합니다....”

과거와 달리 기업의 지적재산권이 중요해짐과 함께 벤처열풍으로 인해 기업의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또한 중요 사업분야가 한 두명의 고급인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벤처기업의 현실에서, 이러한 ‘영업비밀보호계약에 따른 전직금지‘ 상담사례가 과거에 비해 부쩍 늘어가는 있는 추세이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채용과정에서 '퇴직후 몇 년간 회사기밀을 사용하거나 사용하려는 동종회사에 취업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비밀유지와 전직금지를 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전직금지 약정은 기업차원에서는 기업정보 및 연구자료 등 유무형의 기업자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예비적 방법으로, 영업비밀을 다루거나 기업의 중요정보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강제근로와 취업방해, 손해금약정을 직․간접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취지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전직금지 약정에 대해 우리 법원은 “제조공정에 있어서 특수한 기술상의 비밀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비밀정보는 일종의 객관화된 지적재산이므로, 퇴직사원의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하여 회사와의 사이에 침해행위 중지 및 위반시 손해배상 약정금을 정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그 합의서의 내용을 회사의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입장에 있었던 사원들에게 퇴직 후 비밀유지의무 내지 경업금지의무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직업선택의 자유에 관한 헌법규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기본입장을 정하고 있어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전직금지 약정 그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법적 판단을 기초로 기업은 퇴직사원이 영업비밀 침해행위 또는 경업행위를 하였는가 하는 구차한 입증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사전에 이러한 영업비밀보호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동종업체에 취직해 있는 것이나 동종사업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계약위반이 되어 계약의 실효성이나 입증의 용이성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과정에서 다수의 기업들은 전직금지기간을 과도하게 장기적으로 설정하게 되거나 영업비밀의 범위를 추상적으로 정하고 또는 기업내부적으로도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흠결이 있는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전직금지 약정에 대해 법원은 그 약정자체가 무효가 된다고 판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판결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영업비밀보호계약의 취지에 반하게 과도한 기간동안 취업금지를 정하여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해서는 안되며 사회통념적인 판단에서 합리적인 기간으로 정해져야 하는데, 그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이 소유한 영업비밀인 기술정보의 내용과 난이도, 기업의 기술정보 취득에 소요된 기간과 비용, 영업비밀의 유지에 기울인 노력과 방법 등을 고려하고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그에 종속하여 근무하였던 기간, 담당 업무나 직책, 영업비밀에의 접근 정도,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내규나 약정 여부, 노동자의 생계 활동 및 직업선택의 자유와 영업활동의 자유, 기타 변론에 나타난 당사자의 인적․물적 시설 등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대법 97다24528, 1998. 2.13 참조)

구조적인 경제불황에 따른 취업시장의 위축으로 입사과정에서 기업이 과도하게 설정한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전직금지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 노동자로써는 취업 그 자체를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쉽게 다른 직종으로 전직할 수 있는 별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갖지 못한 노동자는 종전의 직장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받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때 영업비밀보호에 대한 유효한 댓가를 정하지 않거나 전직제한기간동안 기업의 보상금지급의무를 규정하지 않거나 혹은 일정한 기간을 초과한 전직제한기간을 설정한 영업비밀보호계약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법부의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해본다.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만큼이나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이며, 과도한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전직금지 계약은 불합리한 근로계약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취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소장 심재정

[ 매일노동뉴스 / 2004년 4월 22일] <노동법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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