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심재정 2003.12.04 00:00
http://www.nodong.or.kr/406876 조회 수 11107 추천 수 2 댓글 0
- 행정관청 무지로 노조 설립신고제도 오,남용 -

모든 노동자에게는 자주적인 단결권을 인정하는 헌법 제33조 제1항에 따라 노동조합 설립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10조 제1항에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할 때에는 설립신고서에 규약을 첨부하여 행정관청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노조설립 '신고제도'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조설립 신고제도는 노조의 설립을 행정관청에서 허가한다거나 승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며, 사용자에 대한 대외적 자주성과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성이라는 두가지 핵심요건을 갖추었다면 노동조합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관청은 이러한 노조설립 신고제도가 헌법에서 기본적으로 부여하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운용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많은 노동조합들의 설립을 지원,지도하다 보면 행정관청에서는 최소한의 설립요건 이외의 불필요한 심사를 하여 마치 노동조합 설립 '허가제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종종 문제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노조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들은 준비과정에서부터 '과연 행정관청에서 우리 노동조합에게 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해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고, 노조활동 첫 관문부터 행정관청의 높은 문턱에서 지쳐 주저앉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지난 9월 무노조경영을 기업이념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는 국내 최고의 S그룹의 계열사인 S플라자 노동조합 설립과정에서 겪은 행정관청의 행태는 현행 신고제도가 무색해지고 행정관청에 의해 사실상 허가제도로 운용되고 있는 현행 노조설립제도의 단적인 예에 다름아니었다.

S플라자 노동조합은 1년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쳐 S시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무노조경영을 최고의 기업이념으로 한다는 S그룹을 상대로 하는 노조설립이었기에 사전에 세밀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준비해서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예상대로 S시청의 담당 공무원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받은지 1시간도 채 안돼 직접 회사를 방문하였고, 즉석에서 회사측이 작성해준 이의신청서와 노조임원들의 회사내 직무확인서를 받아들고 하루만에 노조측의 설립신고서를 반려조치하였다. 회사측에서 작성해준 이의신청서에는 실제 일개 배송,운송,영업업무 담당자에 불과하였던 노조임원들에 대해 '회사전체 매출액을 주무르는 회계담당자' '회사의 주요기밀정보취급자'로 각색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무노조 경영방침에 따라 S그룹이 어떻게든 노조설립만은 막아보겠다며 허위의 직무확인서를 작성,제출한 것보다 더욱 놀란 것은 S시청이 노동조합측에 대해 어떠한 의견진술이나 반론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노동조합이 외부인을 통해 반려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이고 일방적으로 회사측의 주장만을 근거로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하였다는 것이다. 즉, 노조설립 신고인인 노조측이 제출한 설립신고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회사측이 각색한 노조설립 이의신청서류만 서류심사하여 노조설립을 불허한 것이다.

노조설립신고는 행정관청으로부터 설립허가를 받기 위한 출원이 아니라 행정상의 목적을 위해 규정된 행정편의적 제도에 불과하다. 또한 행정관청의 심사행위는 신고된 노조가 사용자로부터 자주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노조가 민주적으로 조직되었는지를 적극적으로 결정,허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노조가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흠결을 발견 내지 보완하도록 하는 행정지도절차로서의 의미만을 갖는다. 따라서 노동조합 스스로가 자신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고 행정관청이 그 흠결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신속하게 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하여야 할 것이다.

S시청의 경우처럼,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에게 자신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증명할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고 오직 회사측이 노조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각색한 이의신청서류만을 근거로 노조설립신고절차가 지연하고 혹은 반려한다면 그 과정에서 근로자의 단결권은 박탈당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투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내홍은 결국 노조가 스스로 짊어지고 나가야할 과제로만 남게된다.
행정편의적인 절차로 국한되어야할 '노조설립 신고제도'가 행정관청의 무지와 무원칙, 전문성 결여로 인해 '노조설립 허가제도'로 오남용되지 않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소장 심재정

[ 매일노동뉴스 / 2003년 12월 04일] <노동법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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