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반대 노조 동의…취업규칙 불리한 변경은?

임금피크제 도입…노조 동의해도 근로자 동의하지 않으면 적용 안돼

“회사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 합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동의했습니다. 이 경우 저도 어쩔 수 없이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게 되나요?”

임금피크제는 정년 이전부터 일정 비율로 임금을 감액해,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정년을 연장(보장)해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그러나 사오정(사십오세 정년)·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라는 신조어에도 알 수 있듯이, 기업의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정년연장(보장) 대신 임금만 깎는 제도란 비판이 나온다.


임금피크제 도입 때 노조 동의해도 근로자 동의하지 않으면 적용 안돼
임금은 가장 핵심적인 근로조건 중 하나다. 단체협약이나 근로계약을 변경하지 않고, 정년연장(보장)을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하는 것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존 취업규칙에 없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사업장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근로자 과반수 이상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서는 노조의 동의를 받아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수 있다. 노조가 없는 회사의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임금피크제 신설)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된다. 이 때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개별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임금피크제)이 적용되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김상환 대법관)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대법 2019.11.14. 선고, 2018다200709).

이번 판결은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으면 개인적으로 반대하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이 발생한다(대법 2008.2.29. 선고, 2007다85997)”는 기존 대법원의 입장과 분명히 다르다. 고용노동부 역시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취업규칙이 불이익 하게 변경되더라도 정당하게 동의를 받았다면, 개별근로자의 동의여부에 관계없이 그 효력이 있다(근로기준과 01254-19016)”는 입장이다.

 
사건의 경위

원고인 근로자 A는 피고인 사용자 B사와 2014년 3월경 연봉을 약 7000만원(월 기본급 590만원)으로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B사는 2014년 6월25일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된 노조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임금피크제 시행세칙 제정)해 공고했다. A는 B사의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의사를 표시했고, 취업규칙 변경 전후 A의 업무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개별근로자 동의도 필요"
집단적 동의로 포장하거나 야합한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 막는 판결 

B사 임금피크제 시행세칙에 따르면, 정년시점이 2년 미만인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제 기준연봉의 60%, 정년 1년 미만이면 임금피크제 기준연봉의 40%를 지급한다. 임금피크제 시행세칙에 따라 정년 2년 미만인 A의 월 기본급은 59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감액됐다(2014년 10월1일~2015년 6월30일). 또 1년 미만 기간(2015년 7월1일~2016년 6월30일)에는 월 기본급이 약 240만원으로 줄었다.

원심(수원지방법원 2017.12.7. 선고, 2017나68660)은 이 사건 취업규칙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 유효하게 변경됐다며, A에게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B사는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된 노조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임금피크제 시행세칙 제정)해 공고했고, 이에 맞서 A는 B사의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의사를 표시,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제2부는 판결문에서 “A가 취업규칙의 기준(임금피크제 시행세칙)에 따라 근로계약을 변경하는 것(임금피크제 시행)에 대하여 동의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연봉액에 관하여 취업규칙에 대하여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근로계약(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은 연봉 약 7000만원의 임금조건)이 우선하여 적용된다며 이를 삭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위한 근거법리로 근로기준법 제97조에 대한 반대해석,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을 명시한 제94조 규정의 취지, 근로조건 대등 결정 원칙을 정한 제4조를 제시했다.

근로기준법 제97조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고 정했다. 제97조 입법취지는 힘의 우위에 있는 사용자가 ‘개별적 노사 간의 합의’라는 형식을 빌려, 근로자로 하여금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을 막아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재판부는 “(제97조) 규정내용과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제97조를 반대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설시했다.

근로기준법 제4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제4조의 입법취지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근로조건 결정을 제어하고, 근로관계당사자 사이에서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 근로계약을 정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입법취지 역시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시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근로기준법 제4조와 제94조) 규정과 취지를 고려하면, 근로기준법 제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므로,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며,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집단적 동의를 얻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도 불구하고, 개별근로자의 동의가 없는 한 기존 근로계약의 내용은 유효하게 존속한다. 또한 변경된 취업규칙 기준이 기존 근로계약의 유리한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 기준보다 기존 근로계약의 유리한 내용이 우선 적용된다.


판결의 의미

취업규칙 작성 및 변경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만 아니라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집단적 동의만으로 요구했던 기존 대법원 판결에서 진일보해, 개별근로자의 동의까지 추가적인 요건으로 포함시켰다.

그동안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요건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개별근로자에 대한 동의를 집단적 동의로 포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노조와 야합해 졸속으로 불이익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사용자의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 시도로부터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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